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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만부교 사건

 

 

942년 10월, 고려에서 발생한 사건.

 

 

 

 

 

 

거란족의 요나라가 화친을 위해서 고려에 사신 30명과 선물로 낚타 50마리를 보냈다.

그런데 고려는 사신은 모조리 섬으로 유배보내고,

선물로 데려온 낙타 50마리를 개경 만부교 밑에 묶어서 굶겨 죽이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당연히 양국간의 관계는 최악이 되었고,

후에 거란이 3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낙타 50마리가 만부교 밑에서 굶어죽었기 때문에 만부교 사건이라고 한다.

 

일단 겉으로 드러낸 이유는

고려 태조 왕건이 같은 민족인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증오해서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왕건의 거란에 대한 증오가 어찌나 심했는지

아예 요나라를 '짐승의 나라'라고 비방했다고.

이 정도면 말 다한 셈이었다.

 

 

사실 낙타를 굶겨 죽인 것은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당시 왕건이 발해계 유민들을 많이 받아들여 정착시키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얼추 답은 나온다.

발해는 거란에게 멸망당했으므로 발해계 유민들을 다독이려면

확실히 거란과 적대하겠다는 퍼포먼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굳이 잘 굶어죽지도 않는 낙타를,

그것도 물가인 다리 아래에다가 묶어두었다는 것은 낙타를 죽이기는 죽이되,

되도록 오래 살려서 그 의미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석 가능하다.

참고로 만부교는 현재 이 사건이 발생한 후로

탁타교(橐駝橋)로 개칭했으며,

현재 탁타교는 북한의 개성특급시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비판이 많았다. 왕

건의 후손인 고려 충선왕은 '정 낙타를 받기 싫었으면

돌려보내면 그만이지 죽일 건 또 뭔가' 하고

선조인 태조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신하들에게 말한 바가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이제현도 "낙타 50마리 키우는 게 백성들에게 무슨 피해가 간다고 굶겨 죽였을까,

싫으면 돌려보내면 될 것 을"이라고 평한 바 있다.

또한 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도 이를 두고 아

무리 오랑캐를 거부한다지만,

죄 없고 말 못하는 짐승을 굶겨죽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면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