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의 역사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인에게 발견된 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또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점이 발견되어 50여 년 만에 전 세계로 퍼졌다.
땅콩과 관련해 유명한 인물 중에는 조지 워싱턴 카버 (1864~1943) 박사가 있다.
본래 흑인 노예로 조지 워싱턴을 존경한 그의 주인이 그에게
'조지 워싱턴'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으며
훗날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양자로 삼아 '카버'라는 성을 물려준다.
정작 조지 워싱턴은 흑인 인권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함정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대학 졸업 후
농학, 미생물학 석사를 딴 그는 흑인 교육기관에 농업학 교수로 취업한다.
당시 미국 남부는 대량의 목화를 재배하던 때라 땅이 온통 척박해져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경이었다.
이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지력을 회복시키는
토마토, 양파, 감자, 고구마, 콩, 땅콩 등을 학생들과 농민들에게 전파하고
특히 땅콩의 전파에 힘을 쏟았다.
이에 지력이 회복되고 땅콩 생산량이 늘어난것까지는 좋았으나
과잉생산된 땅콩이 남아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바구미가 목화밭을 덮쳐 초토화시킨다.
주 작물인 목화는 바구미가 개발살내고 지력을 회복시키고자 심은 땅콩은 처치곤란이 돼버린 상황.
이에 카버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땅콩버터, 마가린, 식용유, 비누, 윤활유, 샴푸 등
무려 300여가지에 이르는 제품을 땅콩을 응용해 만들어낸다.
당시 땅콩은 간식으로 소량 소비되는 정도였으나 카버는 땅콩기름으로 여러가지를 만들어내서
땅콩이라는 작물이 상당히 쓸모있는 작물이란 것을 증명해냈다.
이 덕분에 남아돌던 땅콩의 수요가 계속 발생하고 미국의 경제는 견실해졌다.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든 알게 모르게 카버의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다.
당장 위에 적힌 제품을 안 사용해본 사람?
그러면서도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그는 지금 미국 남부에서 백인과 흑인을 가리지 않고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사후 1977년에는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에,
1990년에는 '위대한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
카버가 땅콩 관련 상품을 여러가지 개발하긴 했지만, 땅콩이 진짜 빛을 보게 된 것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덕분이었다.
경기를 관전하면서 주전부리가 필요했던 관중들이 땅콩을 엄청나게 소비했던 것.
그 때문에 야구장마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버린 땅콩 껍질 치우는 게 매우 고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땅콩 껍질만 따로 청소하는 청소기를 만들어 버렸다.
* 사실 이 점은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는 콩과 식물 전부가 해당한다.
* 앨라배마주에 위치한 흑인대학인 터스키지 대학{Tuskegee University}이다.
* 심지어 다이너마이트의 원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의 원료 중에 땅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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