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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종교재판 (에스파냐, 로마, 인도 고아)

에스파냐의 종교재판



종교재판의 역사에서 특출나는 에스파냐 종교재판은 중세의 종교재판과는 또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다. 

15세기가 끝나면서,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결혼을 통해 에스파냐 연합 왕국이 탄생했다. 

당시 에스파냐에는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무슬림이나 유대인이 많았는데, 

이들을 국내 통일과 안정을 저해하는 요소로 인식한 왕은 교황에게 에스파냐 국내에서의 독자적인 종교재판 기관의 설치를 허가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것이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종교재판인 데다가, 

종교재판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성을 꿰뚫어 보고 있던 교황은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였으나, 

페르난도 왕의 정치적 공세에 의해 결국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에스파냐 종교재판은 수많은 처형자가 속출했으며, 

종교재판의 어두운 이미지를 부각시켜 기독교에 어두운 역사가 드리우게 되었다.


에스파냐에서의 종교재판 폐지는 1834년이었지만, 종교재판이라고 하는 말은 오늘날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말로 인식되어 있다.




로마의 종교재판

1542년 7월21일 교황 바오로 3세의 칙령에 의해 

재조직된 종교재판소는 종래와 같이 교황에 의해 소수의 종교재판관이 임명되는 형식을 중지하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탄압을 위한 조직으로 가톨릭에 대한 비판적인 서적의 출판을 감독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교황의 칙령에 따라 모든 출판물은 종교심문소의 사전 허락 없이는 금지되었다.


1559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첫번째 금서목록(Index of Prohibited Books)과 

삭제목록(Index of Expurgations)을 함께 발행하였다.

(금서목록이 처음 만들어진 것인 1564년 피우 4세에 의해서였고, 

삭제목록은 1571년 최초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로마의 종교재판소는 훗날 검사성부로 개칭되어 교황청의 정부 부처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검사성부는 지금도 각국의 신학자, 철학자, 교회법 전문가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의 의견에 따라 서적에 대한 검열과 심의를 실시하고 있었다.


성 도미니코의 알비파 종교재판(1475년).


당초엔 검사성부는 조르다노 브루노 같은 케이스만 취급했었지만, 

이윽고 개인의 단죄보다 저작물을 중심으로 한 사상의 심의를 다루게 되면서 

그에 따라 금서 목록 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발족 이래, 로마의 종교재판소인 검사성부의 결정이 미치는 범위는 

이탈리아 국내에 한정되어 있어 국외에 대해서는 금서 목록의 송부나 결정 사항의 연락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다. 

검사성부가 취급한 사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17세기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저작에 관한 사안(이른바 갈릴레이 재판)이라 할 수 있다. 

금서 목록은 20세기 들어서야 폐지되었지만, 검사성부 자체는 신앙교리성으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존속하고 있다.




인도 고아의 종교재판


인도에 종교재판소가 들어 온 것은 포르투갈과 정부와 함께 온 예수회로부터이다. 

예수회원들은 고아에 종교재판소를 설치하고 성도마 그리스도인(인도에서 동방교회 교인들을 일컬음)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신학자 벤자민G 윌킨스가 쓴 《이것이 기독교회사입니다》에는 인도 고아에서 예수회의 종교재판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최고의 형벌은 화형 주에서 불태우는 것이었다. 

만일 신약의 그리스도교를 믿던 신자가 불행하게도 

자기의 단순한 신앙을 포기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모든 새로운 제도들, 의식들, 성찬식 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검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쓴 채 공설 광장으로 인도되어 최후의 희생을 치러야 하는 날이 이를 것이었다.

그들의 골고다에 도착하면 화형을 선고 받은 사람들은 장작더미 위에 높이 마련된 화형 주에 묶이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두 명의 제수이트(예수회원)가 구슬픈 어조로 회개의 권유를 외칠 것이었다. 

마침내 종교재판관의 승낙이 떨어지면 긴 막대기 끝에 달아 만든 불타는 횃불이 괴로워하는 순교자들의 얼굴에 가하여지고, 

그 고문은 그들의 얼굴이 까맣게 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다음 그 불꽃은 아랫부분에 적용되었고, 

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희생자들을 태워버렸다."






고기 먹고싶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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