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은 다른 말로 학궁(學宮), 반궁(泮宮)이라고도 불린다.
반궁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흥미로운데,
이는 조선이 제후의 나라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천자(天子)의 나라인 중국에 설립된 학교는 벽옹(辟雍)이라 하여
건물을 큰 연못 가운데에 위치시키는 방법을 써서 사방이 물에 둘러싸이도록 만든다.
그래서 건물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다리가 놓이게 된다.
이와는 달리, 제후의 나라에 세워진 학교는 반궁(泮宮)이라고 하여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부분에만 다리가 연결되는데,
그래서 연못 또한 건물을 다 둘러싸는 것이 아니라
반달 모양으로 양 옆에 존재하게 된다.
벽옹의 연못에 비해 물이 반 밖에 되지 않아 반수(泮水)라고 불렀으며,
이로 인해 반궁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성균관 근처의 대학가 역할을 담당한 '반촌'의 '반 泮'이라는 글자는 '절반'이라는 뜻도 있지만
'학교', 국학(國學), 즉 지금의 대학을 의미한다.
그림(좌) - 문묘 대성전 / (우) 성균관 명륜당
지방에 세워진 향교와 서원 건축의 모범이 된 성균관은 학문을 닦는 유생들을 가르치는 강학공간과,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구성된다.
강당인 '명륜당(明倫堂)'과 기숙사인 '동ㆍ서재(東ㆍ西齋)'가 배움을 위한 강학공간이라면,
대성전과 동무, 서무의 양무로 이어지는 문묘(文廟) 영역은 제향공간이다.
또한 성균관은 보물 제141호인 서울 문묘를 칭하는 다른 이름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강학공간'을 일컫는다.
명륜당(明倫堂)이라는 주요 건물 명칭에서 현재의 지명인 종로구 명륜동,
명륜3가동이 유래되었다
(명륜당은 인륜을 밝힌다는 의미로 공자가 만년에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행단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림 - 보물 제141호 서울 문묘(성균관) 배치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중반부에는,
주요인물들인 잘금 4인방의 시선을 통해
반민들이 겪던 가난하고 고된 삶을 조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이곳에선 성균관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이 거래되었고,
주막과 음식점들, 하숙집들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도 등장하지만,
이곳에선 강의가 끝나고 주점에서 술을 마시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유생들이 넘쳐났다
필자는 일전에 책꽂이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소설 ‘뿌리 깊은 나무’를 인용했던 경험이 있다.
작품 속에는 가축도살을 업으로 삼는 반촌 사람, 즉 반인(泮人) 가리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반민이 가진 낮은 사회적 지위와 억세고 험상궂은 가리온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반민은 백정은 아니지만 소의 도살과 판매를 독점했던 계층으로,
이들이 성균관을 서포트 하던 '반촌'에 자리한 것은 고려 말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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